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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손잡이에서 손을 뗄 때 며칠 전 다녀간 형우가 떠올랐다. 그날 형우는 식사 후 바로 눕는 것이 역류성 식도염의 원인이며 당수치도 올라간다고 노인의 얼굴을 마주하며 당부했다. 형우는 미숙이 그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미숙이 두 사람에게 가까이 올 때 재차 말했었다. "엄마, 식사 아주 천천히 하시고, 소화 좀 되게 산책을 가셔요. 식사하고 바로 누우면 젊은 사람도 소화 안돼." "염려 말어" 노인은 염려하는 아들의 당부에 손사래를 치며 응수했다. "제가 자꾸 말씀드리는데도 점심만 드시면 잠이 쏟아지시나 봐요." 형우가 설핏 미숙을 훑어보았을 때 미숙은 재빨리 말을 이어 신경 쓰겠다는 내색을 했다. "점심 드시자마자 누우시는 것 좀 막아주세요." 구두 주걱을 끼우던 형우가 노인에게 한 말..
미숙은 잠든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깊게 패인 주름과 지친 표정은 미숙에게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점심을 마치고 십여 분도 되지 않아 노인은 붉은색 암체어에 앉아 졸고 있었다. 잠시 후 주방에서 나온 미숙은 혼잣말로 "더 있다 주무시지"라고 흘려 말했다. 미숙이 티브이를 켜자 생각보다 큰 볼륨 소리에 놀랐고 노인도 설핏 잠에서 깨어났다. 귀가 어두운 노인이 키워놓은 티브이소리에 미숙이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방으로 가셔요." 잠에서 깬 노인에게 침대로 가자고 권했다. 노인은 눈을 감은 채 스스로 상체를 일으키며 응했다. 미숙은 노인을 부축하여 안방으로 걸었다. 휠체어 없이 노인을 옮기는 일은 꽤 힘들었다. 하지만 이어질 적막을 생각하면 싫지 않았다.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를 ..
"다 늙어서 무슨!" 기정은 어이없다는 듯이 콧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게. 다 늙어서!" 옆에 앉은 나도 맥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사실 기정의 말은 예상과 달랐다. 누군가 옆사람으로부터 "내가 아는 친구가 이제 친구 그만 하자네"라는 말을 듣는다면 사람들은 그 사유가 무언지 궁금해서 "왜? 무슨 일이 있었기에?"라고 물을 거라 예상된다. 그러나 기정의 반응은 의외였다. 사유를 듣고 "너무했네, 뭘 그렇게까지 그런데."라는 반응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예상과 전혀 다른 "다 늙어서 무슨!" 이란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비에 말을 이어갈 만한 상황도 되지 않았고 나도 딱히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
재경이 한동안 울린 전화기를 집어 들었을 때 언니 재서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재경은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걸터앉아 전화를 받았다. 재경은 커튼으로 가려진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녀는 예고된 작별을 감지했다. 재서는 고모의 임종을 알리고, 자신의 남편이 퇴근하는 대로 내려가자는 말을 전했다. 전화기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건물 아래 배드민턴장을 내려다보았다. 어젯밤 배드민턴장에서 발로 공을 주고받던 홀쭉한 남자애가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단지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좇았었다. 배드민턴장 벤치 아래 축구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공이 찌그러져 보였다. 어젯밤 두 남자애들은 성치않은 공을 가지고 놀았던 모양이다. 쌀쌀한 공기가 콧속으..
'에덴의 동쪽' 주제는 ‘팀셀’ 최근 넷플릭스에서 '에덴의 동쪽' 7부작을 보았다. 제목이 낮익은데? 중간에 졸기도 했지만 재미있고 길이가 적당해서 더 좋다. 재미있는 사실은 극본을 쓴 조이카잔은 제임스 딘이 출연한 영화 에덴의 동쪽의 감독인 엘리아 카잔의 손녀딸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이카잔의 아버지 (즉, 엘리아 카잔의 아들) 니콜라스 카잔인데 이분의 영화필모도 놀랍다. 이들 놀라운 3대의 사람들은 나중에 제대로 살펴보고 싶다. 일단 이번에 본 7부작으로 돌아가자!'제임스 딘'이 출연했던 1955년 영화. 그걸 드라마로 만들었나? 존 스타인벡의 원작소설도 이름이 같은 터라 이번 작품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같은 제목의 이 작품들은 그 뿌리는 같으며 조금은 다르다. 조금 들여다보니 그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