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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오래전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셨지만 부장은 은주에게 사유를 묻지 않았다. 며칠 전 성공적으로 마친 계약 건과 호평을 받은 은주의 시안이 그녀를 신임하는데 큰 몫을 했을 것이라 자신했다. 평소 은주는 결근이나 지각 조퇴가 거의 없었다. 말수가 적은 것도 부장이 신뢰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후 첫 해 가을, 회사 야유회 장소를 논의할 때였다. 영월을 들먹인 정 과장의 시끌벅적한 입담에 가장 반응이 적었던 부장이 은주와 눈이 마주쳤을 때 둘은 어색한 웃음을 공유했었다. 시끄러운 사람을 멀리하는 경향, 떠벌리는 사람들을 편치 않아 하는 기질들이 같을 거라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끝내 정 과장의 주장을 사장은 수락했고 7시 반 회사 앞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으로 버스에 올..
은주의 주방 다용도실 문엔 대형 달력이 걸려있다. 달력 위엔 검은색 긴 고무줄에 감긴 모나미 볼펜도 걸려있다. 날짜들 밑에 적힌 내용들은 매우 다양했다. 날짜 밑에는 집안 대소사며 아이의 어린이집 일정, 어머니의 병원 날짜, 세금과 카드값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별표를 치거나 두세 겹 진하게 덧칠한 모임 날짜도 있었다. "부장님, 영월로 문상 가려고 조퇴하려는데요. 사촌 차편에 동행하려구요 " 처음 작정하고 한 거짓말은 직장 상사 강기혁 부장 앞에서였다. 부장은 돌아올 날만 묻더니, 어서 출발하라고 했다. 일이 마음 같지 않은 지 모니터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는 부장은 삼촌을 들먹일 여지를 주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준비한 여러 가지 핑계들은 은주의 머릿속에서 나올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필요하지 않았다...
근조화환이 늘어선 장례식장 복도엔 무거운 공기가 깔려 있었다. 두꺼운 유리문 안 축축하고 서늘한 냉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화환도 조문객도 없는 권기혁의 구석진 빈소 앞에 섰다. 아버지를 닮은 권기혁의 젊은 시절 사진이 놓여 있었다. 고모네 식구들 틈에 엄마가 부은 얼굴을 하고 나를 보자마자 통곡을 했다. 기혁을 잘 따랐던 지유의 눈도 퉁퉁 부어 있었다. 나도 울컥해지며 눈물이 솟았다. 지유가 기대 앉은 벽 쪽에는 그의 유품이 작은 상자에 담겨 있었다. 지유의 말에 의하면 먼저 발견된 사장의 장례는 이미 끝났는데 그의 동생이라며 내가 오기 전 조문하고 갔다고 했다. 그가 건네고 간 조의금 오십 만원이 권기혁이 받은 조의금 전부가 된 셈이다. 사체 인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고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