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짝의 신발로 남은 사나이 (맨홀 아래) 8

기혁의 휴대폰에 저장된 ‘형님’이라는 연락처, 그 문자 창엔 마지막 메시지가 그들이 사장과 직원이 아니라 가까운 형제같이 느껴질만 했다.

“기혁아 사무실 들러 장화 챙겨갈게 시간 맞춰 와라, 일 끝나고 고기 살게”

사장이 가슴장화도 챙기지 않고 일을 강행한 것 같다고 지유가 경찰처럼 말했다.

“산재 신청하셔야죠. 질식사라면서요.”

장례식장 직원이 말했다. 하지만 고모와 엄마는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 경찰의 말엔 그 둘이 안전장치를 제대로 점검하지도 않은 채 들어간 것이 가장 큰 사고 원인이라고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기혁이가 일하던 그 현장에는, 사실 맨홀 작업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산소농도 측정이나 환기, 감시인 배치 같은 안전절차가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름도 없는 업체의 재하청 구조 아래 선 서류상의 안전관리와 현장의 실제 상황이 달랐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도 끊임없이 엇갈렸다. 이럴 경우 사고가 나면 원청과 발주처, 관리감독기관은 차례차례 서로 책임을 미루게되고, 결국 그날 맨홀 아래에 있었던 이들만이 모든 책임과 슬픔을 온전히 짊어지게 되는거라고 고모부는 설명했다.

“됐어요. 그런 거, 우리랑 상관없어요.”

“네,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옆에 섰던 지유가 고모 손을 잡으며 감사의 고개짓을 했다.

병원 측에서 연락처가 없어 며칠간 무연고자로 처리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엄마를 붙잡았다.

“얘가 왜 그랬을까… 왜 우리 전화번호도 저장을 안 했을까?” 막내고모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지유도 고모를 붙잡았다.

“그 사람이… 기혁이를 사람 취급해줬던 유일한 사람이었을지도 몰라요.” 지유가 맥없이 혼잣말을 했다.

 

 

 기혁의 휴대폰을 열어보니 배터리가 겨우 6퍼센트 남아있었다.

핸드폰의 갤러리엔 세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의 모습만 여러장 있었다.

또렷한 눈매와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어딘가 기혁을 닮아도 보였다.

그 아래 짧게 쓰여 있었다.

‘너는 내 새끼’

나는 속으로 여러 번을 읽어보았다. 너는 내 새끼!

 

 

 

사진 위에 글을 써 넣는 방법을 배운 모양인지 사진마다 다양한 글씨체로 아들이라 써 넣은 것이 보였다.

엄마는 사진과 기혁의 사진을 번갈아 보다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식구들 모두 아이의 사진을 돌려보며 눈을 훔쳤다.

“아이구! 불쌍해라. 기혁아... 어이구, 기혁아.”고모와 엄마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기혁이 일했던 곳은 이름도 없는 재하청 업체였다.

사장도, 직원도 없는 따로 없는 일터에서 그가 '형님'이라 불렀던 사장과 그 자신, 둘이 전부였다.

유독가스가 가득 찼던 맨홀 아래에서, 낡은 신발 하나로 버티던 두 사람의 삶은 그날 아침 뉴스 속 한 문장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