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짝의 신발로 남은 사나이 (맨홀 아래) 마지막

나는 기혁을 거의 모른 채 살아왔다.

그가 어떤 날들을 견디며 살아왔는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했는지도.

마지막까지 아무도 그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았다.

나는 사진 속 아이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의 인생 전체가 책임지는 이 하나 없이 그렇게 흘러가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에게 한 번도 오빠라고 불러보지 못한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도로 아래 터널 속, 그 공포스러웠을 어둠속에서 살아보려 저항했을 그를 상상했다.

살아보려 마음먹은 그를 끝내 죽음으로 내몰고 만 산재, 살기위해 일하다 죽는 일.

만약 이런 변고가 아니었다면,

아이가 자라고, 아이 손을 붙들고 명절을 핑계 삼아 얼굴을 마주할 일이 있었다면,

우리의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까. 나는 문득 그런 상상을 했다.

매일 뉴스에 차고 넘치는 사건 사고들 속에서,

그의 죽음을 되짚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어떤 사람이었는 지 어떤 삶을 살아왔었는지, 나는 끝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제천이라는 지명이 뉴스에 나왔을 때도 내겐 어떤 표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맨홀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