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허들을 넘는 방법) 2

삼촌은 오래전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셨지만 부장은 은주에게 사유를 묻지 않았다. 며칠 전 성공적으로 마친 계약 건과 호평을 받은 은주의 시안이 그녀를 신임하는데 큰 몫을 했을 것이라 자신했다. 평소 은주는 결근이나 지각 조퇴가 거의 없었다. 말수가 적은 것도 부장이 신뢰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후 첫 해 가을, 회사 야유회 장소를 논의할 때였다. 영월을 들먹인 정 과장의 시끌벅적한 입담에 가장 반응이 적었던 부장이 은주와 눈이 마주쳤을 때 둘은 어색한 웃음을 공유했었다. 시끄러운 사람을 멀리하는 경향, 떠벌리는 사람들을 편치 않아 하는 기질들이 같을 거라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끝내 정 과장의 주장을 사장은 수락했고 7시 반 회사 앞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 강원도 산길로 들어서자 굽이굽이 꺾인 길마다 쏠리는 버스 속 울렁거림과 오징어채와 김밥냄새 그리고 멈추지 않는 정 과장의 수다는 은주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할 만큼 싫었다. 자신보다 6개월 뒤늦게 입사한 후배는 집안 결혼식이 있다며 야유회에 불참했다. 결국 막내는 은주였고 막내란 이름으로 식당에서 여러 잔의 소주를 마셔야 했다. 은주에게 술잔은 피할 길 없는 사회생활의 허들이었고 은주는 넘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은주씨가 여긴 잘 알겠네." 하며 혼잣말을 한 뒤 더 큰 소리를 내질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버스는 정 과장의 독무대였다. 단종 유배지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정 과장은 버스에서 내릴 채비를 하던 사장을 불러 세웠다.

"사장님, 은주 씨에게 여길 좀 설명할 기회를 주시더래요."강원도 억양을 흉내 내는 정 과장의 말에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재미있기도 어이없기도 한, 웃음의 색은 한 가지기만 했다. 마이크를 독점한 정 과장은 신이 나 말끝마다 후렴구를 얹었다.

"여기서부턴 우리 신입사원 은주 씨가 가이드가 되실 거래요. 자, 박수"

"그러드래요!"

 

 육아휴직 이년을 마치고 재입사에 성공한 은주에게 경력단절의 어려움보다 넘어야 할 허들로 느껴진 것은 인간관계였다. 사회적 관계의 허들은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이 미술 관련을 전공한 사무실 사람들과는 다르게 정 과장은 샷시 제작회사에서 영업을 오랫동안 해왔던 사람으로 영업에는 수완이 좋았으나 거친 입담과 절제 없는 술자리로 가끔씩 일을 그르친 경력이 있는 중년 남자였다. 영월행 야유회 날 은주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이어진 2차 노래방에서도 정 과장은 어이없는 강원도의 억양을 흉내 내며 은주에게 집거렸다. 이후 회식자리를 피하고 싶을 때마다 거짓말을 했다. 그때마다 부장은 아무런 제지나 훈수를 두지 않았다. 빠져나가는 은주의 등 뒤에 실없는 정 과장의 강원도 사투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녀가 영월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이었으나 초등학교 입학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그녀에게 영월은 그저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이었을 뿐이다. 은주는 자신이 서울 토박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입사 후 한 달도 안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선산이 있는 장지와 은주가 태어난 곳이 언급되었다. 이후 은주는 영월 출신으로 탈바꿈되었다.  

 

 홍보회사에서 처음 작정하고 사용한 '문상'이라는 거짓말은 은주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사했다. 피하고 싶은 세상의 허들을 만날 때마다 위기를 모면하는 중요한 수단, 거짓말의 기능은 제법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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