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짝의 신발로 남은 사나이 (맨홀 아래) 5

아버지 장례식 날, 고모들 사이에 아버지를 빼닮은 그가 앉아 있었다. 대학생이던 나를 본 그는 내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웃었다. 그 모습 속에서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퇴직금과 연금을 두고 고모들은 기혁의 몫을 두고 엄마와 갈등했다. 고모부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큰소리와 험한 말이 오가며 싸움으로 번졌을 상황이었다. 몇 달 뒤, 막내고모와 대화를 나눈 엄마가 큰 결심을 하고 그를 찾았지만, 그는 연안 어선을 타고 있다고 전해졌다.

“모르지. 제 엄마가 바닷가 출신이라 그런지.”

친구와 통화하던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엔 회한과 연민이 묻어 있었다.     

 

큰고모의 장례식에서 다시 만난 그는 마르고 검게 그을려 더 바싹 말라 보였다. 엄마를 대신한 큰고모의 죽음 앞에서 그는 말이 없었고, 눈빛은 공허해 보였다. 장례 후 엄마는 그에게 엄마 노릇을 해보려 했지만,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해 뒤, 그가 원양어선을 타고 멀리 떠났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세월이 흘러 고모들도 늙어 왕래가 끊기면서, 그의 존재도 점점 잊혔다.

 

그가 한국에 정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건 내가 서른이 되어 가던 어느 가을이었다. 한국에서 알게 된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막내 고모의 딸 지유를 통해 들었다. 지유는 나와 동갑으로, 어른들의 감정과는 별개로 대학과 취업 시기를 함께 보냈다. 가족 간의 불화에도 우리는 서울에서 가끔 만나 밥을 먹고 길을 걸었다.     

 

그가 살림을 차리기 전, 아이가 하나 딸린 여자와 함께 인사를 온 날 막내 고모가 눈물을 글썽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지유가 나의 방에 맥주를 사들고 왔던 날이었다.

 

지유는 여자의 생김새며 옷차림, 그리고 같이 온 사내아이의 행동들을 자세히 묘사하며 호기심을 보였다. 그가 전국 각지를 떠도는 동안 여자를 소개한 적은 처음이었다. 지유는 드디어 기혁이 한 곳에 뿌리를 내릴 것 같다고 했다. 그를 오랫동안 보아온 우리는 그가 배를 타기 시작했던 나이에 이른 우리의 삶과 미래를 생각하며 잔을 들었다.      

 

얼마 후 그가 돈벌이를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며 조만간 결혼식도 할 것 같다고 말할 때 오랜만에 달뜬 엄마의 긴 수다가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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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제공,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