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의 한국방문 계기로 알아본 젠슨 황의 인생

코스피의 경신이 매일의 주요 뉴스가 되는 가운데 젠슨황의 방문이 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하는 여러 가지 뉴스가 들립니다. 그의 동선을 체크하는 앱에서부터 당일 주식시장의 반응까지, 경제인들과 회동할 깐부모임의 고깃집까지 기사에 오르내립니다. 주식뉴스에 관심이 큰 이때 그의 방문이 가져올 변화에 무심할 수가 없습니다. 이참에 그에 대해 상세한 내용이 궁금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나무위키

 

출생과 유년기 (1963 ~ 1972) : 요동치는 아시아에서의 시작

1. 젠슨 황은 1963년 대만 타이난시에서 화학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시아의 정세는 불안정했고, 그의 가족은 더 나은 미래를 찾아 이주를 거듭했습니다.

 

2. 대만에서 태국으로: 다섯 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이주했습니다.

 

3. 어머니의 헌신적인 교육: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던 시절, 그의 어머니는 매일 사전에서 임의로 단어 10개를 골라 형제에게 외우게 하고 뜻을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비록 어머니 자신도 그 단어들의 뜻을 몰랐지만, 이 엄격한 교육이 훗날 미국 생활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4. 미국으로의 홀로서기: 태국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해지자, 부모님은 그가 9(형은 11)가 되던 해에 두 형제만 먼저 미국의 친척이 있는 곳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소년기 (1972 ~ 1980) : 거친 환경에서 피어난 회복탄력성

1. 미국에 도착한 어린 형제는 착오로 인해 일반 학교가 아닌, 정서적·행동적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모인 켄터키주의 한 기숙학교(Oneida Baptist Institute)로 보내졌습니다. 이곳에서 젠슨 황은 거친 환경을 견뎌내며 강인한 생존력을 배웠습니다.

 

2. 기숙학교에서의 생존법: 동급생들로부터 인종차별과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글을 모르는 룸메이트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대신 그 친구로부터 운동(벤치프레스)을 배우며 험난한 환경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매일 방과 후에는 학교 화장실을 청소하는 고된 일을 해야 했습니다.

 

3. 탁구 천재와 데니스(Denny's) 알바: 이후 오리건주로 이사해 평범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시절 탁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15세 때 전미 오픈 탁구 대회 복식 3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15세부터 패밀리 레스토랑인 '데니스'에서 접시돌리기, 웨이터 등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훗날 이 아르바이트가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 준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청년기 (1980 ~ 1993) : 엔지니어로서의 성장과 사랑

컴퓨터와 기술의 미래에 매료된 그는 본격적인 엔지니어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1. 대학 시절과 평생의 인연: 오리건 주립대학교 전기공학부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강의실에서 실험실 파트너로 만난 로리 밀스(Lori Mills)에게 첫눈에 반했고,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해 슬하에 11녀를 두게 됩니다.

 (프러포즈 당시 그는 "30세에 내 회사를 가질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2. 실리콘밸리로의 진출: 1984년 졸업 후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기업인 AMDLSI 로직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엔지니어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일하면서 기술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중년기 ~ 현재 (1993 ~ 현재) : 엔비디아 창업과 AI 제국의 건설

그가 아내와 약속했던 서른 살이 되던 해인 1993, 그의 인생과 세계 IT 역사를 바꾼 거대한 도전이 시작됩니다.

 

1. 엔비디아(NVIDIA) 창업 - 1993

과거 아르바이트를 했던 단골 레스토랑 '데니스'의 한 구석 테이블에서 동료 엔지니어 크리스 말라 초스키,,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단돈 4만 달러로 엔비디아를 설립했습니다. "3D 그래픽을 PC로 가져오겠다"는 비전이었습니다.

 

2. 파산 위기와 GPU의 탄성 - 1995~ 1999

첫 제품(NV1)의 실패로 회사 자금이 몇 주 차밖에 남지 않은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배수의 진을 치고 개발한 RIVA 128이 대성공을 거두고, 1999년 세계 최초로 **GPU(Graphics Processing Unit)**라는 개념을 정립한 'GeForce 256'을 출시하며 게이밍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도박, CUDA 개발

 

3. 2006

그래픽 칩을 프로그래밍 가능한 범용 계산기로 바꾸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CUDA(쿠다)를 발표했습니다. 매년 수억 달러의 비용이 들고 주가가 폭락하는 와중에도 젠슨 황은 이 투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미친 짓"이 훗날 AI 혁명의 절대적인 인프라가 됩니다.

 

AI 시대로의 도약 - 2012년 ~ 현재

2012AI의 새 지평을 연 '알렉스넷(AlexNet)'이 엔비디아의 GPU로 학습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엔비디아는 단순한 그래픽 카드 회사를 넘어 'AI의 뇌'를 만드는 기업으로 진화했습니다. 현재 엔비디아는 시가총액 세계 최상위권을 다투는 거대 제국이 되었습니다.

 

"지옥을 거쳐왔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젠슨 황은 모교 졸업식 축사에서 후배들에게 "고통과 고난을 즐겨라(I wish you ample amounts of pain and suffering)"라는 독특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소년기의 척박한 환경과 창업 이후 겪은 수많은 파산 위기가 오늘날의 그를 만든 가장 큰 자산이었기 때문입니다. 멋집니다!

 

가죽쟈켓만 고수하는 이유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CEO의 시그니처가 된 검은 가죽 재킷, 단순히 옷을 좋아해서라기보다 그 안에는 꽤 영리하고 흥미로운 이유들이 담겨 있다는데요.

 

1. "매일 아침 뭘 입을지 고민하기 싫어서" (시간 절약)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 마크 저커버그의 회색 티셔츠와 같은 맥락입니다.

 

2. 아내와 딸의 강력한 스타일링 (가족의 조언)

젠슨 황은 본인이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고백했는데요.

한 인터뷰에서는 "내 패션은 전적으로 아내와 딸이 결정한다"며 유쾌하게 공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3. 엔비디아(NVIDIA)의 브랜드 그 자체

혁신과 도전의 이미지: 격식을 차린 정장 대신 가죽 재킷을 입음으로써, 기술 업계의 '반항아', '감각적인 혁신가'라는 이미지를 줍니다.

걸어 다니는 로고: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은 검은 가죽 재킷만 봐도 자연스럽게 젠슨 황과 엔비디아를 떠올립니다. 엄청난 브랜드 각인 효과죠.

 

4. 20년 넘게 이어진 뚝심과 일관성

그는 실제로 약 20년 동안 공식 석상에 거의 항상 가죽 재킷을 입고 등장했습니다. (물론 늘 같은 옷은 아니고, 더운 날씨용, 공식 행사용 등 조금씩 다른 디자인의 가죽 재킷을 여러 벌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덥고 습한 대만 행사에서도 가죽 재킷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에 대한 엄청난 뚝심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가 입는 재킷의 브랜드(톰 포드 등)가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