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왜 늘 과거와 대척점에 서있는가 – 이해찬의 '교육 개혁'을 기억하며

이해찬 전 국무총리 별세

73세로 베트남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 (2026년 1월 25일) 건강수명, 73세에 돌아가시니 조금 이른감이 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1970~80년대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을 거친 운동권 1세대 정치인이었습니다. 이후 1988년 국회에 처음 진출해 7선 의원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하는 등 오랜 기간 한국 진보 정당과 정부의 핵심 인물로 활동해 왔습니다. 연일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보입니다. 길에도 그를 추모하는 플랜카드들이 보입니다.

그는 무엇보다 교육정책 논란으로 많은 교사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입니다.

 

이해찬의 교육 정책과 논란

교육부 장관 시절의 개혁

이해찬은 1998~1999년 김대중 정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한국의 경쟁 중심·입시 중심 교육 체제를 바꾸기 위한 대규모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교 평준화 강화

지역 간·학교 간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평준화를 확대했습니다.

 

2. 입시 부담 완화

시험 중심 교육을 견제하고, 시험·평가 중심의 대학 입시 체제를 다소 완화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3. 자율적 학습·특기적성 교육 강조

한 가지 잘하는 능력이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취지로 특기·적성 평가와 비교과 요소를 강화하려는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사실 얼마나 이상적인가요? 도제식 교육이 있었다면 하고 마음먹었던 시절이었습니다.)

 

4. 교원 인사·제도 개선

교사들의 정년·근무 체계, 교육 행정 구조 등도 일부 바꾸는 시도를 했습니다. (1999년. 65세 교사 정년을 62세로 만든 사람입니다.)

 

“이해찬 세대” 논란

이 같은 개혁들은 당시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입시체제 변경과 평가 체계 개편으로 인해 대입 준비가 혼란스러워졌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이 시기의 정책들을 경험하며 학습 경쟁력 저하를 주장했습니다

 

소위 이해찬 세대라는 표현은 이러한 교육정책의 영향을 받은 학생 세대를 가리키며 긍정·부정 평가가 갈린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학기말 고사나 중간고사 등 시험의 폐해와 줄세우기식 교육을 없애려고 노력했던 것이지만 우리나라 현실이 녹록하지 않아 대학 가서 미적분을 다시 가르쳐야 수업이 된다는 서울대 교수들의 말이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언론에 자주 등장했지요.)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도 시험 중심 교육을 다소 축소하면서 오히려 성적·입시 부담이 커졌다는 비판, 그리고 정책이 잘못 설계돼 학력 저하를 부추겼다는 의견 등이 등장했습니다.

이즈음 초등학교의 학기말 고사 같은 것들이 없어지고 수행평가가 등장했던 것 같습니다. 법적으로 종료시킨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행해지던 학기말 시험 같은 것들이 약화 축소 폐지되어 가고 관찰평가, 포트폴리오 등 수행평가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교사·교육계와의 갈등

교육부 장관으로서의 개혁 추진 때문에 교원 단체, 교사 집단과의 갈등도 일부 있었습니다. 이런 논의가 이루어지는 과정 중에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폄하하는 발언이나 소신이 큰 갈등의 원이이 되었던 것도 같습니다.

일부 교사와 교원 단체는 획일적인 평준화 확대와 성적 평가 체계 변화가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평가했었습니다. 사실 시험 성적으로 줄세우기가 가장 편하고 쉬운 평가방법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이름의 과정평가를 계획하고 실행하기에 많은 업무가 추가되었다고 생각되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밀어붙이기 정책 과정에서 충분한 소통과 합의 없이 추진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또한 교직계에 밀어붙이기 과정중에 과거 교사의 업무나 관행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나 언급이 교사들의 반발을 샀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이러한 논란은 그 시대의 교육 구조 전체와 맞물린 문제였고, 이후 교육 정책에서도 계속해서 재검토와 수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해찬의 교육 정책은 경쟁 중심에서 다양성·자율성 중심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현장 적응과 정책 설계에서의 미흡함으로 인해 비판도 함께 받았던 정책이었습니다. “이해찬 세대라는 표현 자체가 긍정·부정 양측의 의미를 모두 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입시성적에 가려진 교육의 본질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에 충분히 공감했었습니다. 어딘가? 대쪽같은 성품일 것 같은 느낌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 자신과 민주진영을 위한, 그의 가장 유명한 어록을 캡처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