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소설을 즐겨 읽지만, 대중적인 사회과학, 인문서들도 꾸준히 읽는 편이다. 유발 하라리나 송길영, 김대식 교수 같은 이들의 책이 그렇다. 오랜만에 지인이 추천해 준 책이 너무 좋아, 요즘은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 선물까지 하고 있다.

마침 오늘 아침 뉴스에 현대자동차 노조의 로봇화 반대 움직임과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각각 다룬 기사가 실렸었다. 인공지능을 만든 기술자들조차 자신의 기업과 회사에서 밀려나는 상황에서, 현대자동차 공장 역시 필수 노동자들마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에 맞춰 간신히 숫자로 채워지는 형국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가까운 미래를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2022년 11월 말, 인공지능 ChatGPT가 세상에 처음 알려졌을 때 이를 직접 사용해보고 느낀 점을 곧바로 책으로 펴낸 김대식 교수의 저서-챗 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를 출간되자마자 사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후 세상의 변화는 바로 나의 일상에 찾아들어 변화의 속도에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다. 하루하루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사람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문제, 즉 인간의 일자리와 더 나아가 인간 문화를 이끌어온 핵심 동력인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일자리와 지위를 얻기 위한 공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하고, 50~60대를 제외한 지금의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의 미래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이런 말들은 결국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영화 '아이 로봇' 같은 미래가 이미 코앞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반복해서 떠오른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치자마자, 이러한 세태 속에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핵심을 저자는 놀라울 만큼 명료하고 자신 있게 짚어낸다. 그것은 바로 노동에 대한 정의이며, 이 정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의 문장들은 이해하기 쉽고,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각각의 문장은 선명하고 단단하며, 깔끔하면서도 묘하게 따뜻하다. 이는 노동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일자리 개편에 대한 전제가 확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을 근본부터 이해하고 재조직하자는 데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이 문장을 읽으며 마치 모든 문제가 풀린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물론 이를 토대로 실제 일자리를 다시 설계하는 과정은 각계각층 사람들의 입장과 처지, 욕망이 서로 다르기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한 가지는 이것이다.
인간의 일자리는 인간의 존엄을 기본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작가의 독특한 이력
작가의 특별한 이력( 노동조합활동으로 인한 구속이나 서울시 북부 기술교육원 원장경력)이 이 책이 나오게 한 큰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다. 글로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아다니고 노동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관찰하며 얻은 통찰력이 글의 곳곳에서 감탄을 일으킨다.

작가 백완기가 예로 든 노르웨이의 어업 사례는 노동 설계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을 잘 보여준다. 나 역시 북유럽 끝자락을 여행하며 현지를 살폈던 유튜버, ‘서재로’의 영상을 통해,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어부들의 수준 높은 삶과 그 일자리에 대한 젊은이들의 동경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로봇이나 인공지능에게 맡길 일과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겨야 할 일을 가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기준은 인간의 존엄이다. 작가의 지적대로 '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에 대한 존엄을 바탕으로 노동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야만 하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들어섰다.
이 책을 추천한 이들의 면면 역시 놀랍다. 모두 나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 김종구 전 한겨레 편집국장, 김한주 법무법인 동서양재 대표변호사, 윤승용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 조동표 한국장학재단 멘토 등 총 13명의 추천이 이를 증명한다. 그럴 만하다. 나 역시 지금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하고 있으니 말이다.
책의 구성과 진가
1부 : 문명의 기원과 인간의 노동
2부 : 계승된 지혜, 새로운 빛이 되다.
3부 : 문명의 전환, 노동의 새로운 의미
4부 : AI시대, 다시 노동을 묻다

아직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괴베클리 테페'라는 튀르키예의 유적지를 다룬 대목에서, 그곳을 다녀온 이들의 여행기를 찾아보며 작가가 묘사한 풍경을 하나하나 확인하느라 오래 머물렀다. 나도 그곳에 갈 수 있을지 가늠해보았다. 쉽지 않을 듯하다. 이스탄불에서도 비행기로 네 시간가량 더 들어가야 하는 튀르키예 동부에 위치한 이 유적지는, 내가 공부하던 시절 알던 인간 문명의 기원을 훨씬 이전, 약 1만여 년 전으로 끌어올려놓았다. ‘이전 역사를 보다’를 통해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격이 다시 떠오른다.
이집트에 이르러 내 관심은 더 커졌다. 이집트를 가보지 않은데다가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이 개관했기에 이모저모 살피는 중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나 루브르에서 이집트의 거대한 작품들에 턱을 떨어트린 적이 있지만 그랜드미술관을 직접 가서 보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을까 상상하면 더없이 황홀하다.
십여 년 전 로마를 보며 일반인들이 이 위대한 건축물 아래서 얼마나 큰 위엄을 느끼고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을까? 감탄한 적이 있다. 거기에 세월의 두께를 얹었으니 뉴욕의 엠파이어빌딩과는 다른 감회가 가슴을 벅차게 했었다.
상상하기 힘들 만큼 거대한 파라오들의 무덤 앞에 노동력을 제공한 사람들은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납득했을까? 작가는 이집트의 영속성을 향한 권력자들의 무덤과 신전에 자신의 노동을 바친 사람들의 존엄을 묻는다. 백완기 작가의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로 넘어가 이제 인간이 중심이 된 세계관을 설명해 준다. 내가 세계사를 배우지 않아(인체해부학을 배우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이과를 지망했었다는!) 즐거운 공부가 되는 부분들이다.
그리스의 유적을 돌아보며 작가는 2000여년 전 그리스문화유적들을 돌아보며 여전히 우리가 집착하는 질문들-인간이란 무엇이며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에 대한 질문들은 소환하고 있었다. 세계사를 훑어보는 공부 외에도 몰랐던 지식들을 건지는 보람이 있다. 도편추방제라는 말을 생전 처음 들어본다(듣고도 잊었을 수도?) 지금의 탄핵제와 비슷한 개념과 위력을 가진 제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제 겨우 2부 5장에 이르러 이스탄불에 다다랐다. 모두가 알다시피 두 대륙이 만나는 지점으로 와 이슬람문화에 대해서도 이 튀르키에의 지리학적 위상과 변화를 살펴볼 기회도 얻게 되었다. 우리에겐 먼 이슬람문화의 교리를 살펴보며 그중에 무슬람이 실천해야하는 다섯가지 교리를 살피며 그 중 하나가 자선임을 주목하는 작가를 만나게 된다.
예전에 이슬람문화를 전파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계신? 서강대학교 유로메나(Euro-MENA)연구소의 박현도 교수의 설명에서도 매우 인상적인 이슬람문화를 엿본 적이 있다. 타인을 고통에 빠지게 할 수 있는 금전적 이득-고리대금 같은 것이 얼마나 죄악시되는지 말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이해하게 된다. 모르면 적대시하기 쉬운 것이 세상이다.
이 교리를 들어 글을 풀어나가는 작가에게서 노동과 인간의 존엄을 연결 짓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275쪽 AI 시대 핵심의제: 부의 재분배와 인간존엄을 위한 길에 쓰일 그의 의지와 소신을 미리 짐작하고 있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지만 모두에게 빨리 소개하고 싶다. 밑줄을 그으며 읽고 있다.
내가 읽어낸 부분에서 이 책의 요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있어 그대로 메모해 본다
( 페이지 81)
"고대 이집트는 AI 시대의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권력이든 기술이든 그것이 신격화되어 견제하고 질문할 길이 사라지는 순간 모두의 불행이 된다. 파라오의 권위가 거대한 건축물에서 나왔듯, 오늘날 AI의 권위는 보이지 않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에서 나온다(유튜브나 쇼츠를 보는 인간이 '기술적 봉건주의의 농노'로 불리는 것이 슬프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제도-투명한 검증, 공정성 인증, 시민 참여형 거버넌스-를 세워야 한다."
작가의 이러한 생각은 마지막 4부에 가서 매우 구체적으로 제안되고 있다. 막연히 두렵다고만 하지 않는 작가의 자세와 신념이 매우 인상적이다.
점심을 먹고 빨리 책을 읽어나갈 생각이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생겨 참 좋다.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참 시기적절한 좋은 책이다. 막연히 인공지능과 로봇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당장 인류사에 커다란 문화의 변화와 족적 그 계보를 찾아 여행하는 이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책이 돼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튀르키에며 그리스, 이집트를 간다는 것은 그냥 규모와 시간에 감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되어줄 것이다.
작가의 또다른 책도 있어 궁금해진다.

민주주의는 먹거리라고 표현한 작가의 굳건한 신념이 녹아들었을 책일 것이다. 또한 모든 낯선 것은 '문명의 체험'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시선으로 어서 이집트 여행준비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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