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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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 '타인의 집'

 

8개의 작품으로 묶여진 단편소설집 타인의 집을 친구가 빌려줘 읽게 되었다.
 
손원평! 최근 10여년간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기에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들 외에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표지그림을 보니 편하지 않은 단절의 느낌이 있다. 제목에서 집을 매개로 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작가가 보여줄 서늘함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그래서 좋았다. 단편소설의 특유의 스피드와 명확한 정서가 바로 바로 전달되었다.
 
일부 작품에서는 지금의 현실이면서도 미래의 영화와 중첩되어 있고 한편으로는 영국의 시리즈 블랙미러를 보는 심리적 불편함이 있었다. 알고 보니 손원평 작가는 영화평론가로 먼저 데뷔했고 실제로 영화를 여러 번 만든 감독이다. 그래선지 작품의 일부는 영화를 줄거리를 설명해 주는 느낌이 있고 일부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그래서 주인공들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기분도 들었다.
 
중년 여성들만의 미묘한 심리적 시기심이나 중년남성의 일상에서의 지침, 집과 공간의 소유와 빈부격차로 만들어진 사회의 갈등, 그리고 고령화로 인한 상상- 사회구조의 변화와 법제에 의한 규제들이 매우 세밀하게 그려져 마음이 편하지 않다.
 
외면하고 싶어 고개를 도리질 하지만 턱을 잡고 현실의 단면을 눈밑에 들이미는 느낌이다.
 

느낌 혹은 소감

 
'괴물들'은 삶에 지친 어린이집 교사가 자신이 낳은 쌍둥이를 지징하는 이름이다. 그녀의 아들들은 생활에 지친 이 여자에게 돌봄을 외면받으며 자기들끼리 체구를 키워온 몬스터들로 묘사된다. 
어린이집 교사의 사건 사고 뉴스도 떠오르고 아주 마르고 핏기없는 중년여성의 어린이집 교사가 상상되었다.
손원평의 소설의 힘이랄까? 인물이 그려지고 구체적인 장면이 상상된다는 것이다.
자기 혈육의 양육도 힘든데 타인의 아이들 여럿을 종일 돌보는 끔찍한 노동 현장이 떠오른다.
삶에 지친 보육교사들의 현실을 풍자한 느낌도 있지만 자기 자식조차 괴물로 그려질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아리아드네 정원'은 초고령화로 인해 죽지 않는 노인들을 국가가 어떤 방법으로 대우할 것이지 묻기도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회침투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할까를 묻는 소설이다. 초고령화 문제와 인구감소에 따른 노동력의 보충을 위해 벌어진 다문화 현상을 블랙미러식으로 그리고 있다.
초고령화가 심각해질 우리나라 20,30년 후를 상상하면 가히 근접한 미래의 현실이 아닐까 섬찟하다. 최근에 이문제는  OECD국가 중 최고의 스피드로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고 알려지고 있다. 실제의 거리 및 공원에서 노인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목격되고 인근의 건물을 점령한 요양원의 실태를 보기만 해도 멀지 않은 미래일 수 있겠다 싶다.

책의 제목으로 선택된 타인의 집이야말로 참 잘그려진 작품이다.
가장 불쾌한 느낌의 '타인의 집'은 최근의 가장 큰 이슈인 가진 것이 없는 젊은이들의 주거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거의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이 쪼개기식 주거를 선택해야 하는 사회적 현실이 무섭게 그려진다. 말이 좋아 쉐어하우스일까? 그보다 못한 그룹의 쉐어에는 타인에게 한 발짝의 공간도 내어줄 수 없는 생존의 이기심이 끔찍하게! 그리고 헛헛하게 그려진다. 국토부가 형평성의 문제등으로 전세사기당한 사람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없다는 결론에 달하자 반발한 사람들의 뉴스모습이 회상되었다. 

 
단편 '상자 속의 남자'는 '아몬드'의 외전이라고 한다. 상자 속의 남자라고 해서 뭔가 중첩의 의미가 있는 건가? 궁금해하며 읽는데 상자를 나르는 택배기사의 시선은 결국 갇힌 느낌의 상자 속에서 진행되어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 묻지마 살인같은 사회적 현상을 묘사하여 불쾌감도 있고 오버랩되어 있는 인물들의 연결고리가 작위적이다.

 

작가이자 영화감독, 손원평

전반적인 주제의식이 무겁기에 손원평을 검색해보았다. 그녀는 서강대에서 사회학을, 부전공으로는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당연히 사회문제에 관심과 이해가 클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또 하나 특이한 점, 그녀는 정치인 손학규 씨의 딸(세바시를 찾아 화면을 보니 말하는 입매가 딱 닮아 신기하다)이라고 한다. 그녀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덧 씌워진 다양한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야 할 예술가이기에 이 점은 생략하는 것이 옳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아몬드라는 작품은 그녀의 가장 히트작이라고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 않아 찾아볼 생각이다. 
 
그녀의 이십대는 놀라웠다고 스스로 말한다. 대학시절 이미 영화평론상을 받았으며 얼마되지 않아 영화학교입학을, 매우 수월하게 했다고 한다. 여러 단편영화가 수상을 하기도하고 처음 쓴 소설이 신춘문예 최종심사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즈음의 자신감이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20대가 갑작스런 실패로 이어지게되며 10여년을 고군분투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이 제출한 글의 작가명(가명)이 헛갈릴만큼 많은 글들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거듭되는 실패로 큰 고비를 겪게되었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가 내린 결론은 '성공과 좌절의 판단을 타인에게 맡기지 말자'였다고 한다. 꾸준히 (어떻게든 남을) 글을  써야겠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유지하며 자신의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들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 일, 이십분의 언어공부와 운동 그리고 악기연습등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추구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신의 그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청소년이나 젊은이에게 한정지워진 사람의 성장을 어른도 할 수 있으며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찾아온 성공이었을까? 아몬드라는 작품이 백만권이나 판매되었다고 하니 꼭 읽어봐야겠다.
 
 
아무튼 친구덕에 오랜만에 단편소설을 즐겁게(서늘하게! 소름 끼치게!) 읽었다. 손원평이라는 40대 초반의 작가이자 평론가이자 감독을 만나 기쁘다.
 
앞으로 눈 여겨볼 사람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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