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 디아스의 장편소설 '먼 곳에서'

이전에 퓰리처상을 받았던 '트러스트'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시대와 한 사람의 인생여정을 본인과 다른 관련인들이 기술하는 4개의 파트로 구성된 트러스트가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안 읽힌다고 했는데 제겐 아주 흥미로우면서 세세하고 과장적인 묘사의 문장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에르난 디아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인터뷰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00년대 초의 미국 뉴욕, 특히 1920년대를 충격적으로 전해 들었던 제게, 그리고 일주일 머물렀던 뉴욕의 거리들이 주는 느낌까지 모두 회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 이전의, 첫 장편이라 알려진 '먼 곳에서 (In The Distance)'를 읽어보았습니다.
내용 참 황량합니다. 그런데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랜드캐년에 이르는 그 황량한 사막지대를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세세합니다.

 
 
이 이야기는 스웨덴의 한 젊은이가 아버지가 가난을 벗어나라 손에 쥐어준 몇 푼을 들고 형과함께 아메리카로 출발하며 시작됩니다. 스웨덴을 떠나는 그들의 사정에서만 서사가 존재할 뿐인 이 영화같은 이야기! 어디인지 정확한 좌표를 알길 없는 호칸(주인공)에게 새로운 땅은 거대한 사막처럼 황량합니다. 게다가 첫 승선부터 형과 헤어지는 사고로 무조건 형이 가겠다고 한 뉴욕을 향할 뿐 그가 걷고 부딪히는 사람과 가축 또는 자연들은 매번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입니다. 당시 배움이 없는 주인공은 뉴욕이 어딘지 가늠도 하지 못한 채 미 대륙을 건너보겠다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발을 내디딥니다.
 
이 소설 특이한 점은 주인공은 계속 걷고 일부의 무리들을 만나지만 그와 사람들간의 서사는 축적되지 않는 묘한 이끌림이 있습니다. 어떤 소녀에게 특별한 마음이 일렁이는 순간도 잠깐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페이지를 건너뛰어도 읽는데 무리가 없을 만큼 가끔 부딪히고 어울린 사람들의 무리도 그와 엮여 대단한 서사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재미있습니다.
 
고요한 땅 아메리카를 걷다가 해에 그슬린 남자를 상상하며 따라가다보면 추운 지역에 도달하며 다시 러시아를 거쳐 스웨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가 악조건 속에서 그 황량한 땅을 가로지를 때, 왜 해가 뜨는 방향을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는지 약간의 조바심이 일었지만 서부투어를 하던 때 느낀 그 막막한 사막지대와 고열을 생각하면 아무런 지식이 없는 그에게 별 수없는 생존의 의지가 발을 끌어당겼다고도 생각됩니다.
 
막바지에 이르러 추운 지역을 만날 때 개인적으로 알라스카가 떠올랐고 동시에 알래스카에 정착한 우리나라 택시기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생계를 위해 낯선 땅, 그 혹독함에 맞서 정착한 우리나라 사람들에 관한 다큐가 호칸을 그려낸 머릿속에 생생하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에르난 디아스의 묘사력과 비유들은 참 다양해서 놀랍습니다.
"하늘은 낮아졌고 태양은 우유부단했다" 이 문장이 생각납니다. 자연에 대한 묘사가 다채로운 긴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호칸이 되어보기도 하고 낯선 여행객이 되어보기도 합니다.
 
"황무지에 남겨놓은 것은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 그 황량한 자연 속에 들어가 보는 일이 즐겁습니다. 어쩌면 지나온 모든 인생은 되돌릴 수 없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스웨덴에서 자랐나고 하는데 그가 겪었던 언어의 혼란이 호칸이 대륙에서 만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 그려지는 것도 같습니다.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에르난 디아스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의 래퍼토리가 갖는 일률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서사가 없는 한 사람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고 잘 읽혔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도 몰입할 수 있었던 영화들이 떠오르는데요. 그져 걷는것으로 이루어진 '더 로드'와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