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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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승화 시인

     인생이 개떡 같거나!


sns로 그녀와 연락이 닿으리라고는! 시인 엄승화 씨입니다. 혹시 그녀를 가장한 이상한 사람은 아닌거겟지?
의심하는 사이 보내온 그녀의 카톡 한마디에 의혹은 사라지고 여전히 그녀임을 그리고 시인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녀의 대표 시입니다. '온다는 사람'을 옮겨봅니다.
 
온다는 사람

                                    엄승화

기약 없지만 기다리고 있어요.
유리 접시에 숨긴 과일은
좀 더 성한 것만 골라두어요.
그것이 시들어 갈 때
또 싱싱한 소망을 따 넣어두는
이 지독한 기다림일랑
어서 거두어 가요.
그래도 어쩌지 못한 일인 양
스스로는 접지 못해요.
저물도록 발소리는 문 앞에
멈추지 않았어요.
차라리 좀 더 빨리 어둠에
갇히면요
올 수 없노라 냉정한 전갈을
읽을 수도 있겠어요.
오지 말아요. 꽃이 다 피면
문을 닫고 가만히 버려질 때
함께 부풀어가던 과실도
제 힘에 넘쳐 터져요.
튀는 과즙이 생살을
문질러요.
 
'온다는 사람'으로 구글에서 검색을 하면 바로 이런 화면이 뜨고 오른쪽에 엄승화 씨의 이름이 보입니다.
 

구글

 '온다는 사람'은 그녀의 대표적 시이자 시집제목입니다.
 30여 년 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 모임에서 동기길초가 기억해내고 내게 당시의 기억들을 끄집어 냈습니다. 오래 전 고대앞!
 
잊고 있었던 '로뜨레아몽' 얘기를 들추어내는 바람에 엄승화가 떠올랐습니다.
엄승화는 고대 앞 카페 '로뜨레아몽'을 운영했고 가끔씩 수유리나 우이동에 거주하는 시인(황금찬시인)들과 고대생들의 시낭송회를 열었었습니다. 랭보와 헛갈리기도 하는 로뜨레아몽, 이른 나이 24에 시집 한 권 남기고 죽은 시인, 이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산문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를 남기고 죽은 시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카페 로뜨레아몽이 떠오릅니다.
카페 맞은편에 걸려있던 검은 휘장과 보들레에르 평전에 대표적으로 실리는 얼굴그림도 떠오릅니다.

내가 가진 이 책은 이미 너덜거리고 책꽂이에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습니다.
아!  엄승화,  결혼 후 우연히 한 두 번 더 보았던 내 청춘에 깊이 관여된 인물! 중 하나임에 틀림없는데 잊고 있었습니다. 나의 결혼 이후 그녀가 시인과 결혼했단 걸 들었었고! 그녀의 이쁜 여동생과 멋진 남자친구!
문학청년들의 밤샘토론. 
 
아! 생각납니다. 그녀와 처음 나눈 대화가 매우 이색적이라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 제가 옷이 딱 두벌인 건 저의 자랑이자 치욕이죠." 자랑이자 치욕인 일들은 또 어떤게 있을까? 일반적으로 하는 대화는 아니었기에 유독 그 말이 주는 느낌은 그녀가 분명히 시인이구나! 하는 그져 놀라움만 남아 기억됩니다. 한편으로 지금은 그 말에 웃음도 납니다. 자랑이자 치욕적인 옷 두벌! 무엇이 자랑이고 무엇이 치욕이었을지만 짐작할 뿐입니다.
 
로뜨레아몽에서 벌어졌던 갖가지유치한 젊은 날의 치기와 거들먹도 함께 추억됩니다.
어찌됐건 내부의 검은 휘장이 인상적인 로뜨레아몽을 운영했던 그녀가 묘사한 자기존재의 표현-자랑이자 치욕-이었을겁니다.
같은 시기에 신촌역에 희랍을 운영하던 예술가 조선희(기억이 확실하지 않다)씨도 같이 떠오릅니다.
엄승화씨가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며 사나 갑자기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현재 뉴질랜드  한적한  마을에서  아담한 와인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날까지 열어가며 이웃을 들썩거리게도 했답니다.

맞다!  그녀는 강원도 영월출생입니다. 어쩜 이렇게 어울리는지!

에곤쉴레를 닮은 과동기도 떠오르고 죽음과 소녀를 설명하던 한량도 떠오르는 오늘은 1983년에 가 거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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