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광-이름을 가진 남자-(단편소설) 4

은광의 솜씨로 겨우 냉골을 면한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지난주 일요일 서울로 향하려는 기숙을 발견한 은광이 자신의 텃밭을 가로질러 기숙에게 성급하게 다가왔다.

"혹시 다음 주에도 내려오시나요?"은광이 기숙의 걸음을 확인하기는 처음이었다.

주말에 다른 집안일을 보려던 기숙이 머뭇거리자 은광이 바로 물었다.

"시간 되시면 서울 시내에서 한 번 뵙고 싶은데요."

기숙이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주저하자 은광은 바로 말을 이어갔다.

"종로나 광화문에서 두시 정도면 어떨까요?"

기숙은 일정을 체크하려는 양 핸드폰을 켰지만 은광이 바로 이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종로에 제가 잘 아는 찻집이 있습니다. 두 시에 그곳에서 뵙지요. 주소는 바로 전송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은광이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까딱이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자신의 밭으로 성큼성큼 돌아갔다.

 

기숙이 은광의 집을 지나쳐 대로로 빠져나왔을 때 옆좌석에 올려놓은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빠르게 달아나던 은광을 보며 기숙이 핸드폰의 진동모드를 소리로 바꿔 놓았었다. 신호등 앞에 섰을 때 기숙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은광에게서 찻집 주소가 날아왔다. 잘 알만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동네였다.

작년 장마 후 동네 사람들이 여럿 모였다가 흩어질 때 서로 급박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전화번호를 주고받아 둔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이 되었다. 가끔 그의 프사를 살펴본 기숙이었다. 단 하나의 사진에는 멋스러운 한옥과 현대가 어우러진 멋진 찻집이 올려져 있었다.

사진 속의 찻집의 이름은 예그리나로 보였다. 그가 보내온 주소에 '예그리나'가 찍혀 있었다. 기숙이 프사에서 사진으로만 보고 느꼈던 낯선 이름, 예그리나라의 뜻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며칠 뒤 그녀의 운동모임에는 일찍 개화한 남쪽의 벚꽃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며 다시 한번 기숙의 집 이야기가 잠깐 거론되었지만 기숙은 아무 말도 이어가지 않았다. 기숙의 적어진 말수에 눈치가 빠른 친구 정미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며 은광의 안부를 물었다.

"그 양반 요즘 잘 있냐?"

"그렇지 뭐."갈무리한 대답에 의아한 정미가 짖꿎은 표정을 지으며 재차 물었다.

"아직 펜션엔 손님도 없을 거고, 밭도 바쁘기 전인데, 요즘 뭐 하며 지내시나? 은광 씨는."

"너는 말끝마다 은광 씨! 은광 씨! 그만해라."

머쓱해진 정미가 이상기류를 모를 리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 심장한 표정으로 기숙을 노려봤지만 기숙은 더 길게 이어가지 않고 다른 이에게 화제를 돌려 이어나갔고 정미는 뭔가 모를 일이라는 듯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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