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정규앨범만 40장을 낸 미국 가수, 퓰리쳐 상,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대중음악인, 힙합장르를 제외하면 미국음악 전반에 그의 음악이 있다(배순탁-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활동)고 평가되는 밥 딜런을 그린 영화 'Complete Unknown'을 보기로 했습니다. '컴플리틀리 언노운'으로 기억했는데 '컴플리트 언노운'이네요.
전기영화로서 두 영화가 매우 다른 가치를 가졌기에 비교하는 맛도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밥 딜런을 그려내는 일도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하나는 그 다양성으로 영화를 본 사람의 의문만을 남기는 영화로써, 이번 영화는 전기영화로서의 충실함을 재현한 티모시 살라메를 마주하는 느낌으로 그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목만으로 바로 몇년 전, 밥 딜런을 그린 영화 -I'm not there-에 이은 그에 대한 해석이 이어지는 것 같고 앞으로도 또 다른 언노운은 지속될거란 예감이 듭니다.

밥 딜런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마르고 부스스한 머리, 목을 긁는 특유의 목소리(장르가 된 음성)와 말하듯 웅얼거리는 창법과 익숙한 가락들은 성인 모두에게 익숙할 것 같습니다. ' one more cup of coffee' 와 김광석이 번안하여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부른 노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가 가장 유명할까요? 저도 대학생땐 '존 바에즈'의 500 마일즈를 흥얼거렸고 '밥 딜런'의 'one more cup of coffee'의 후렴구만을 소리 내었었습니다.

실제 이름 '로버트 짐 머만'에서 '로버트'를 애칭하는 '밥'에 '딜런 토마스'라는 시인의 이름에서 '딜런'을 가져와 자신의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미네소타에서 태어나고 대학에선 문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입학 얼마 후 바로 그만두고 뉴욕으로 떠나면서 그의 본격적인 음악인생이 펼쳐집니다. 뉴욕에서 그는 당시 세간에 인기가 있었으나 병으로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입원 중인 '우디 거스리1912-1967-미국의 전통 포크에 모던 포크의 장을 연 가수'를 찾아가 헌정의 노래를 부르며 영화가 시작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아임 낫 데얼'을 보며 그(밥 딜런)가 왜 퓰리쳐 및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하는지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고유한 기질과 성향이 있습니다. 동시에 다양한 입장과 기호, 그리고 세월과 처지, 상대에 따라 생기는 마음의 변화가 공존합니다. 밥 딜런은 세간의 평이나 요구 혹은 박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게 공존하는 다양한 존재이유를 들여다보려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그것을 표현한 노랫말은 어느 문학적 표현보다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그의 노랫말이 가진 은유와 상징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관점과 질문들)은 고대 서사시의 한 귀절만큼이나 소중하고 그래서 그가 퓰리쳐 상이나 노벨상을 탈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노래 가사들은 대학의 교재로도 쓰인다고 하는군요. 하기야 시와 노래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가 전자기타로 노래하며 일부 대중의 비난-변질-을 받았던 1960년대 중반을 생각하면 지금의 시대 정신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을 지나 1960년대 미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은 어떤 특징을 보일까요?
196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와 예술은 당시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독특한 특징을 형성했습니다. 이 시기의 사회 풍조는 예술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고, 창작의 방향성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밥 딜런과 존 바에즈는 반전과 저항, 인권운동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여겨집니다. 그들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 어떤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을까요?
1960년대는 베트남 전쟁, 시민권 운동, 여성 해방 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격변기였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예술가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제작하도록 자극했습니다.
특히 시민권 운동은 흑인 예술가들에게 정체성과 인종 문제를 탐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표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회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종 차별과 정의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소비주의와 대중문화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정말 풍요로왔던 것 같습니다. 반면 물질에 대한 반성은 아시아의 불교와 명상에 관심을 갖게 했으며 반체제와 시위 그리고 인종차별 등에 대한 반항으로 젊은이들의 히피문화와 개인의 자유, 성 정체성의 폭로 등 매우 다이나믹한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미국의 경제적 번영과 소비주의는 대중문화와 예술의 중요한 주제로도 떠올랐습니다. 광고, 만화, 소비재 등 일상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팝 아트는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며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캠벨 수프 캔"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만화 스타일 작품은 소비 사회를 풍자하면서도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예술적 특징은 또 어떻게 판단될까요? 팝 아트와 실험적 양식이 다양하게 대두됩니다.
팝 아트는 소비재와 대중문화를 주제로 삼아 전통적인 미술 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각 언어를 창조했습니다. 이는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예술가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동시에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같은 실험적 양식도 등장하며 창작의 다양성이 확대되었습니다.
정치적 메시지와 참여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시민권 운동과 연계하여 작품을 통해 저항과 정의를 표현했습니다. 이들은 추상미술, 콜라주, 다큐멘터리 사진 등 다양한 형식을 활용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대중음악과 문학 부분에서는록 음악과 포크 음악은 반전 운동과 히피 문화의 주요 매체로 자리 잡았으며, 밥 딜런(Bob Dylan) 같은 음악가는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학에서는 실비아 플러스(Sylvia Plath)나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 같은 작가들이 환경 문제와 여성 문제를 다루며 새로운 목소리를 냈습니다.
결론적으로 당시 1960년대1960 미국의 대중문화와 예술은 사회적 변화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예술은 단순히 미학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며 현대 문화와 예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됩니다.
'아임 낫 데얼'처럼 7개의 자아가 공존하고 번민하고 부딪히는 것이 세상이고 또한 그 개성들은 끝이 없이 다양한 변주곡으로 연주되는 것이 세상인 것 같습니다. 'Complete Unknown'을 보고 또 다른 밥 딜런과 더 멋있는 티모시 살라메(영화 촬영을 앞두고 5개월간 밥 딜런이 되기 위한 준비가 예정된 그가 코로나사태를 맞이하여 더 긴 준비기간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기타 연주법과 밥 딜런의 노랫말을 다 외우는 가상한 노력기간이 만들어졌다니, 세상일은 참 재미있습니다. 여하간 아름다운 배우 티모시 살라메의 성장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를 만나는 일이야말로 또 하나의 변주를 만들어 내는 일반인의 일상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덧붙임
로버트(Robert)가 밥(Bob)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유는 영어 이름의 발음 변화와 간소화 과정 때문입니다. 로버트에서 밥으로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쳤다고 합니다.
Robert → Rob: 이름의 첫 음절을 따서 줄임
Rob → Bob: R 발음이 B 발음으로 변화하며 더 쉬운 발음으로 전환
이러한 변화는 발음의 편의성과 친근감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밥(Bob)은 로버트(Robert)의 여러 애칭 중 하나로, 다른 애칭으로는 로빈(Robin), 롭(Rob), 보비(Bobby) 등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정식 이름(legal name) 대신 선호하는 애칭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미국의 문화적 특성으로, 보다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정숙이라면 숙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 같습니다.
로버트(Robert)라는 이름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미국에서 남자아이 이름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인기가 다소 줄어들어 순위가 64위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